테헤란에서 페르시아의 케르만샤를 통해 서쪽으로 여행하는 사람은 비히스툰 (혹은 비시툰) 바위로 알려진 거대한 절벽을 지나게 된다. 그리고 지상에서 300 피트 높이에 새겨진 어떤 부조도 발견할 것이다. 키가 큰 사람이 서서 손을 열 명의 다른 사람에게 펼치고 있고, 또 다른 두 명은 뒤에 서 있는 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와 열두 제자라느니, 스승이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장면이라는 등 여러가지로 상상하였다.
그림 부조 옆에는 평평하게 다듬어진 돌판에 화살촉 모양을 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이같은 문양은 17세기 이래로 페르시아로 여행하는 사람들에 의해 종종 발견된 것으로, 몇몇 유럽인들이 그 문양을 손으로 그린 후 본국에 있는 다름 사람에게 보여주었지만 당시 누구도 그것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18세기가 되면서 그 문자의 신비가 조금씩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사람들 사이에서 그 문양은 단순한 모양이 아니라 일종의 문자임이 알려졌다. 그리고 그 문자를 “쐐기문자”라고 불렀다.
이 쐐기 문자로 된 비문을 최초로 해독하려고 했던 사람은 탐험가 칼스텐 니부어였다. 평소 페르시아에 관한 책을 즐겨 읽었던 니부어는 1761년 덴마크에서 페르시아로 탐험을 시작한다. 페르시아의 고대 수도인 페르세폴리스에서 고대 비문을 3개월 간에 걸쳐 복사한 후 1774-1778년에 자신의 탐험의 이야기와 비문에 관한 이야기를 출판하였다. 그 책에서 쐐기 문자에 대한 해독도 시도하였는데, 비시툰 비문이 세 개의 다른 언어로 되어있다는 것도 알아내었다.
니부어의 선구자적 작업 이래, 이 비문의 해독에 기여한 사람은 그로트펜드(Grotefend)라는 독일인 학자였다. 평소 언어와 관계된 수수께끼를 즐겨했던 그는 1802년에 비시툰 비문을 해독하고 다리우스, 제륵시스, ‘아들’ ‘왕’이라는 단어들을 해독했다. 당시 괴팅겐 대학의 무관심으로 그로트펜드의 발견은 즉시 발표되지 못했고, 따라서 비시툰 비문 해독의 작업은 다른 학자들의 손에 넘어간다.
비시툰 비문은 ‘고대 페르시아어’를 해독하는데 열쇠가 되고, 동시에 보다 복잡했던 바빌론 쐐기 문자도 해독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주는 것이다. 비시툰 바위에서 이런 열쇠를 끄집어낸 사람은 정열적인 영국인 헨리 롤린슨이었다. 그는 1827년 17살의 나이로 동인도회사에서 일하였고 힌두어와 페르시아어를 배웠다. 1835년 군대 보과관으로 케르만샤에서 일하고 있을 때, 케르만샤에 있던 고대 비문을 보고 다리우스와, 제륵시스의 이름을 읽어내었다. 이때까지 롤린슨은 그로트펱드와 다른 학자들의 작업을 알지못하였다는 점에서 이것은 예사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곧 그는 비시툰 바위로 옮겨 비시툰 비문을 카피하기 시작하였다.
헨리 롤린슨 (1810-1895)
그의 비시툰 카피 작업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그 카피 작업을 묘사하고 있다.
“사다리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사다리를 가지고도 상당한 위험이 따랐다. 사다리를 지탱할 땅이 너무 좁았다. 사다리를 부조가 있는 곳까지 올리면 각이 너무 급해저 도저히 사람이 타고 올라갈 수 없을 정도이고 각을 낮추면 너무 짦아 사다리 맨 꼭대기에서 몸을 바위에 기댄 채, 한 손은 공책을 한 손은 연필을 들고 아무 안전 장치 없이 작업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위쪽의 비문을 다 카피할 수 있었지만, 재미있어야 했을 작업이 수반되는 위험 때문에 그렇게 즐거운 것은 되지 못했다.”
다른 곳에서 그는 사다리가 넘어가 절벽 넘어로 사다리에 달려 친구들에 의해 간신히 목숨을 구한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롤린슨은 1837년 비문의 200여줄을 번역하고 해설한 내용을 영국에서 Memoir on the Persian Version of the Behistun Inscriptions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였다. 이 책의 출판됨으로써 고대 페르시아어 연구가 탄탄한 기초위에 놓여지게 된 것이다.
롤린슨은 다른 두 종류의 문서에 해독에 있어서도 큰 기여를 했다. 쐐기 문자로 된 두 번 째 문서는 수사어, 혹은 엘람어로 밝혀졌다. 왜냐하면 그 문자가 고대 엘람의 수도인 수도에서 주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세번 째 문자는 가장 카피하기 힘든 부분에 있었는데, 1847년 롤린슨은 지역 소년을 고용하여 바위타기를 시켰다. 그 소년은 세번 째 문자가 있는 곳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했고, 그 비문의 탁본을 만들었다. 그 후 일년, 롤린슨은 그 비문도 해석할 수 있었다.
비시툰 비문의 내용은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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