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웨스트민스터신학교 홈페이지(www.wts.edu)에는 엔즈 교수의 정직에 대한 공지가 올라와 있다. 엔즈 교수는 이번 봄학기가 끝나는 5월말을 기점으로 교수직의 모든 특권을 한시적으로 박탈당하게 된다. 물론 정직은 해고와 달라 한시적이지만 이번 정직 결정이 해고에 이르는 수순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 그렇게 많은 논쟁을 불러 온 엔즈 교수의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의 어떤 내용들이 많은 복음주의자들의 심기를 건드렸을까?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좀 설명드리겠다. 이것은 개인블로그이므로 각주는 생략한다.
1. 엔즈는 성경의 인간적 특징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성경이 하나님 말씀임을 강조하지 않았다?
엔즈는 성경의 인간적 특징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성육신 유비를 사용했다. 그리스도가 100% 인간인 동시에 100% 하나님이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100%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100% 인간의 말이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성경이라는 주장이다. 그 말씀이 성육신하였다는 것은 그 것이 천상의 언어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당시 계시의 대상이었던 이스라엘의 언어, 문화, 세계관을 통해 주어졌다. 당시의 이스라엘의 언어, 문화, 세계관은 고대근동문화권의 일부였으므로 성경이 고대근동 언어문화 세계관의 특징을 가지는 것은 성육신 계시의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엔즈는 이런 비판에 대하 자신의 책에서 성경의 신적인 특징을 좀더 강조하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이나 자신의 책은 처음부터 복음주의자들의 성경관에서 간과되어온 성경의 인간적인 특징들을 다루고 그것을 기존의 복음주의 성경관과 조화시키려는 것이었음을 상기시킨다.
2. 엔즈는 제2장에서 "신화"를 "인생의 궁극적 문제들에 대답하는 고대인의 전근대적인, 과학 이전의 방법"이라고 정의 한후, 창세기의 처음 부분이 그런 의미에서 신화적 성경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비판가들은 이런 설명에 대해, 엔즈가 창세기 처음부분의 역사성을 부인한다고 발끈한다. 이에 대해 엔즈는 창세기 처음 부분이 "기본적 역사적 참조점"(basic historical referential nature)을 가진다는 사실을 좀더 자주 강하게 강조하지 못한 점을 인정했다. 엔즈는 창세기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가 하나님의 천지창조 과정을 오늘날 신문기자가 교통사고 리포트 작성하듯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한 천지창조를 창세기 기자는 자신의 문학적 코드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이런 코드화 과정은 다분히 무의식적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것이 몸에 밴 것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엔즈가 신화적이라고 말했다고 해서 천지창조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3. 비평가들은 엔즈가 성경이 '정확무오한 영감된 말씀'이라는 것을 실제적으로 부인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엔즈는 복음주의자들이 '정확무오'에 대한 선이해를 가지고 그것에 성경을 끼워맞추려는 태도를 꼬집는다. 엔즈는 '정확무오'라는 것을 성경적 데이타에 근거해 정의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비판가들은 성경 외적인 자료(2장에서 엔즈가 제시한 여러가지 고대근동의 자료들)로 영감된 성경의 성격을 정의하고자 한다고 엔즈를 비판한다.
4. 엔즈가 비판받는 네번째 이유는 성경의 모순적인 부분들을 조화하여 설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엔즈는 성경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성경의 본질로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엔즈는 성경에 내제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일종의 긴장을 형성하다는 점을 시인한다. 그는 성경 안에 "서로 화해될 수 없는 세계관"들이 공존하도록 한 것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상기시킨다. 이에 대해 비판가들은 엔즈가 구약성경의 문제들을 지나치게 과장하여 부곽한다고 주장한다. 엔즈는 자신의 책에서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사실을 좀더 명확하게 힘주어 강조하지 못한 점은 인정하지만 자신이 성경의 무오류성을 신봉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받는다.
5. 비판가들은 엔즈가 객관적이고 왜곡되지 않은 역사서술의 가능성을 부정한다고 비판한다.
엔즈에 따르면 모든 역사서술은 사실에 대한 해석에 근거한다. 따라서 역사서술은 역사서술가의 세계관, 저술 목적 등에 영향을 받는다. 여기까지는 비판가들도 동의한다. 그러나 비판가들은 그런 역사서술의 관점성이 역사서술의 참됨을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다시말해 그들은 성경의 역사서술이 어떤 관점에서 쓰여졌고 그런의미에서 객관적이지 않다하더라고 그런 서술이 참이 아닌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그들이 말한는 '참'이라는 것을 정의하기 전에는 의미가 없다. 만약 역사서술의 참을 사실과의 일치에서 찾는 것이라는 해석된 역사는 반드시 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비판가들은 엔즈가 성경의 역사성에 부정적인 인식을 퍼뜨린다고 주장했다.
위 다섯 가지 외에 다른 이슈들도 전재하나 위의 다섯가지가 글을 읽는 분들의 호기심을 어느정도 만족시켰을 것으로 여긴다. 참고로
엔즈의 책에 대한 여러가지 서평이 쏟아졌다. 많은 긍적적인 서평이외에도 다소 부정적인 서평 중 G. K. Beale과 D. A. Carson의 것이 눈에 띈다.
http://findarticles.com/p/articles/mi_qa3817/is_200606/ai_n17176285 (Beale 교수)
http://findarticles.com/p/articles/mi_qa3817/is_200606/ai_n17176284/pg_1 (엔즈의 대답)
http://www.reformation21.org/Past_Issues/2006_Issues_1_16_/2006_Issues_1_16_Miscellaneous/Beale_Surrejoinder/282/ (Beale의 재응답)
http://www.reformation21.org/Past_Issues/2006_Issues_1_16_/2006_Issues_1_16_Shelf_LIfe/May_2006/May_2006/181/vobId__2926/pm__434/ (D. A. Ca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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